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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마음속에 다 그려지지 않은 몸짓들과, 내 입술에 올릴 생각조차 못했던 말들과, 끝까지 꿈꾸지 못하고 잊어버린 꿈들이 담긴 우물이다.
나는 누군가 건물을 짓는 도중에 무엇을 지으려 했는지 생각하다 지쳐버려 결국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의 폐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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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새벽은 세상에서 처음 맞는 새벽이다. 수많은 눈알 같은 유리창을 통해 밝아오는 빛이 데려온 고요를 맞이하는 건물들의 정면이 서쪽을 항해 노란빛 섞인 분홍색에서 차츰 따스한 흰색으로 물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런 시간, 이런 빛, 이런 나의 존재는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내일의 모습은 또 다를 테고, 내일은 새로 만들어진 눈으로 새로움이 가득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