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출간되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추천사를 읽고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는데 마침 최근에 입수되어 받아보았다. 오후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는데 얇은 책이지만 묵직하게 다가왔다.
작가는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는 그림책 작가이자, 엄마, 아내, 딸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난민 신분(p.118)'이 되었다. 이 책은 그녀가 하리코프에서 지하실 대피 생활을 거쳐 엄마, 남편과 이별하고 바르샤바로 불가리아로 피난가는 동안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돈이 종이조각이 된다. 통장 잔고로 찍힌 숫자는 그저 숫자의 나열이 된다. 우리 동네, 끼니, 빵, 초콜릿, 내 침대, 불빛 등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그렇지 않게된다. 나와 소중한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는다. 무엇보다 엄마를 뒤로하고 나오는 장면, 사랑하는 남편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장면에선 눈물이 났다. 종종 나쁜 일은 입에도 담지말라는 미신같은 어른들의 말씀이 있다. 아이들과 자신의 팔에 신상정보를 쓴다는 것이 어떤 일에 대비하는 것인지 알면서도 그리했을 작가의 마음을 떠올리면 감히 마음이 애리다. 이 와중에도 작가는 자신을 도와준 '러시아인'에 대한 감사를 잊지않고, 뉴스로 상황을 접하는 우리가 '사람을 민족으로 대하지 않도록' 해준다.
분단국가에 살고있다. 전쟁에 대해 배웠다. 영화로 책으로 다큐멘터리로 무수히 접하며 살아왔지만,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얽히고설킨 지금 이 시대에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서로를 망치는 아주 어리석은 일이므로,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접했을 때 적잖이 놀랐다. 이 책을 읽고 이게 과거의 일, 모두 지나간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작가는 많은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을 사귄 덕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검색해 본 숱한 기사를 통해 피난조차 가지 못하고 처참한 상황에 놓인 분들의 사연을 접하니 언젠가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두려워지기도 했다. 하루빨리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일부 사람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죄하길,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당연한 일상이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