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p 그렇지만 때로는 나를 짓누르는 바로 이 순간처럼 외부에 있는 사물보다 나 자신이 휠씬 더 멀게 느껴지고, 모든 것이 잘못 내린 기차역에서 외롭게 다음에 올 삼등 열차를 기다리는 비 내리고 질척이는 밤처럼 변해버리는 순간도 있다.
59p 몸을 씻듯 운명도 씻어주고 옷을 갈아입듯 삶도 갈아줘야 한다. 먹고 자는 일처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리해야 하고, 그것을 우리는 위생이라고 부른다.
78p 독서로 자유를 얻는다. 독서로 객관성을 획득한다. 나는 내가 되기를 멈추고 산만하게 흡어져 있는 존재가 되기를 그만둔다. 내가 읽는 것은 때로 나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의복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명료함이고, 만물을 비추는 태양이고, 고요한 대지에 그림자를 느리운 달이고,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이고, 녹색 이파리를 흔드는 나무의 견고함이고, 농장 연못에 깃든 평화이고, 포도나무 덩굴이 우거진 해안의 비탈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