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새’는 비교적 현실적인 느낌이었다면, 2부 ‘밤’과 3부 ‘불꽃’에서는 몽환적인 느낌과 현실적인 느낌을 같이 받았습니다. 현실적이면서도 잔잔했던 1부에서 제주로, 중산간으로 찾아간 경하가 차가운 새를 마주하고 고이 묻어 주는 장면은 4.3 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을 묻어 주려는 것과도 겹쳐 보였습니다. 인선과 같이 진행하기로 했던, 경하의 계속된 꿈을 바탕으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프로젝트를 관두자고 말했던 것처럼요. 그렇지만 2부에서 경하는 자신을 찾아온 인선에게 ‘새를 묻었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새가 아직 살아 있는 듯 대답을 회피합니다. 물론 인선은 이미 다 아는 것 같지만요. 그리고 인선과 어머니가 모은 기록들을 보며 4.3 사건을 파고들어 갑니다. 신문 스크랩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해 가면서, 주로 생존자들과 당시 주변인들의 증언을 되짚어 봅니다. 이 과정에서 경하는 ‘읽고 싶지 않다’거나 ‘누구도 이걸 읽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뭔가에 홀린 듯 종이를 넘기며 사진과 증언들을 계속 마주합니다. 가족들이 4.3사건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인선은, 희생자들의 기억을 그냥 묻어둘 생각이 없습니다. 인선은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무서운 고통’과도 같은 지극한 사랑으로 희생자들을 감싸주고 이들을 기억하려 합니다. 이 사건으로 오빠를 잃고 평생 그의 자취를 찾아 헤멨던 인선의 어머니처럼요. 결국 경하도 인선에게 동참하지 않을까요. 몇 차례 시도 끝에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불 붙은 성냥을 바라보며, 경하도 앞으로 나아갈 희망과 동력을 얻은 것이 아닐까요.
희생자들이 너무나 인간적으로 다가와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지만, 그럼에도 얼른 다음 부분을 읽고 싶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하지만, 그만큼 슬프지만 그래도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과거를 똑바로 마주하고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인선과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 기억과 작별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