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떼기 전에, 가장 좋아하던 그림책이 있었다. 엄마 무릎에 앉아서 같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도 늘 처음처럼 좋았다. 어느날은 내가 엄마한테 책을 먼저 읽어주겠다고 나섰는데, 한글을 전혀 몰라서 내 멋대로 이야기를 지어서 얼토당토 하지도 않은 동화를 만들어냈다. 내심 암호 같은 한글이 원망스럽기도, 호기롭게 나선 주제에 당황하는 내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도 알 건 다 알았다. 내가 지금 한글을 못 읽어서 마구잡이로 떠들어대는 중이란 걸. 그럼에도 엄마는 내 말이 다 맞다고, 이야기가 너무 재밌다고 좋아해주셨던 기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사랑을 말하지 않고도 사랑을 알 수 있는 방법. 나는 이 소중한 기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