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너무 게으른 시인'이라고 고백하는 최승자 시인의 이야기.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성실히 삶과 죽음 그리고 시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마냥 낙천적이지도 그렇다고 마냥 염세적이지만은 않은 시인의 시원시원한 인생관에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속이 뻥 뚫렸다. '눈 가리고 절망, 눈 가리고 희망'하며 사는 게 어떠냐는 작가님. 어차피 한판 놀러 나와, 신명 풀리는 대로 놀자는 작가님 말대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그래도 인생아, 한 번쯤은 내가 하고 싶은 삶을 살며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잘 풀려주길 바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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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언제나 내 꿈을 짓밟아오기만 한 인생아, 마지막으로 한판만 재미있게 잘 풀려줄래? 그러면 그다음에 내가 고이 죽어줄게. 꽃처럼 피어나는 모가지는 아니지만, 고이 꺾어 네 발밑에 바칠게. 이번에도 네가 잘 풀려주지 않으면 도중에 내가 먼저 깽판 쳐버릴 거야. 신발짝을 벗어서 네 면상을 딱 때려줄 거야. 그리고 절대로 고이 죽어주지 않을 거야.
_ 시를 뭐하러 쓰냐고?
죽음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책' 그리고 '작가님'들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는 가장 큰 아픔을 겪고 나서야 책을 만났지만, 그분이 내가 나와 잘 지내라고 남겨준 유산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앞으로도 책의 도움을 받으며 평안해지고 싶다.
그리고 내가 귀애하는 아버지도 이제는, 당신의 부모님을 만나 덜 외롭길 바라본다.
작가님의 죽음에 관한 글을 읽으며 위와 같은 생각이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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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내게 남겨주고 간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갖고 있었던 죽음의 관념 혹은 죽음의 감각을 산산이 깨뜨려 나로 하여금 이 일회적인 삶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게끔 해주고, 그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잘살아야 한다는 당위성과 용기와 각오를 갖게 해준 것이리라.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가장 큰 대가를 치르고서야 깨닫는다는 게 한심스럽고 한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러나 어쩌랴.
_죽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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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병든 몸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고통을 이젠 벗어버리고, 당신 말씀대로 풀이 파릇파릇 돋은 다음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 그리고 먼저 저승에 가 있던 내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어 이젠 덜 외롭겠구나 하는 생각이 슬픔 가운데서도 작은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_짧은 생각들
자기가 하는 일이 작은 위안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시인이 부러웠다. 나도 얼른 위안이 되는, 보람있는 일을 천천히 시작해보고 싶다. 비록 시시한 위안이라고 할지라도, 나를 힘껏 위로해 준다는 걸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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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이 만약에 내게 무엇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구원도 믿음도 희망도 아니고, 다만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완벽하게 놀고먹지만은 않았다는 위안, 그러나 그것은 내 삶의 현실에 아무런 역동적 작용도 할 수가 없는, 힘없는 시시한 위안일 뿐이다.
_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