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인 '시선으로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서 보는 그 무언가,
혹은 그런 시선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그런 의미의 무엇을 다루고 있는 책이 아닌가 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마주치게 된 '심시선 가계도'를 보고 바로 그 생각을 멋쩍게 내려놓긴 했지만.
하지만 역시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짐작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닌거 같다.
심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이 가족들은 그 누구보다도 심시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물려받았던, 어머니 대신 자기가 살림을 하지 않으면 누구 하나 죽겠구나 해서 집안일을 했던.
이 집안에선 남자들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
아버지인 요제프 리와 홍낙환이 그렇고, 큰딸의 남편인 박태호와 아들, 이명준, 막내딸의 남편 정보근도.
심지어 정보근은 한국에 남아 각 집의 식물들에 물 주는 임무를 받고는 일찌감치 소설에서 빠져버린다.
그런 점이 이 소설의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단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의 이야기를 부각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이 가족들의 모습은 참으로 이상적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들.
개방적인 사고방식 같은 정신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경제적으로도 딱히 쪼들리는 느낌이 없어서 더욱 그렇다.
심시선의 10주기를 맞이하여 심시선이 생활한 적이 있었던 하와이에
온 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내기로 한 것은 파격적인 느낌이었다.
명혜가 아무리 카리스마가 넘치는 장녀라 하더라도
모든 가족이 군말 없이 그 비용과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조금은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졌다.
여름 휴가를 낼 때도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눈치를 봐야하는 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겠지만.
그렇다고 하와이에 가서 심시선의 제사를 후딱 지내고 바로 돌아오는 그런 일정도 아니다.
일주일 정도를 푹 머무르면서 각자의 여행을 즐긴다.
훌라와 서핑을 배우기도 하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보기도 한다.
현지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빅아일랜드에 가서 화산을 구경하기도 한다.
그렇게 각자 즐기다가 심시선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을 가지고 모이면 그것이 곧 제사상이 된다.
사실 심시선의 제사를 핑계로 하와이에서 다들 즐겁게 지내고 마음의 치유를 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규림을 빼고는 아무도 언어의 장벽 같은 것도 느끼지 않는다.
아버지가 독일인이어서 영어가 익숙했던 걸까.
솔직히 그런 상황이 부럽고 배가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활동들이 심시선을 위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심시선은 그런 제사상을 받고 흐뭇해할 사람이었으니까.
홍동백서로 상을 차리고 절을 하는 제사라면 귀신이 되었어도 엎어버렸을 것이 심시선이니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심시선과 가족들에 대한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게 되는데,
그렇게 부러워보이던 사람들이었건만 다들 크고 작은 어두움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때 건강이 좋지 않아 부모님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우윤에게 감정 이입이 많이 됐다.
나 역시 큰 병을 앓게 되는 바람에 부모님을 비롯한 온 가족의 불안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서핑을 배웠듯이 나도 뭔가에 좀 도전을 해봐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이 책에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역시 심시선이다.
이 책의 외전으로 심시선에 대해서만 다룬 소설이 하나 나와줬으면 좋겠다고 할 만큼.
심시선은 자신이 어렵게 살아온 20세기,
그 20세기 그대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21세기를 만들어서 딸들에게 물려줬다.
그녀가 그렇게 하게끔 한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
심시선이라면 아마 그 사랑을 자기 가족에게만 주려고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