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사 蟲師'라는 만화책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인 충사, 깅코가 눈 오는 풍경을 보며 하는 독백.
고요하다
하지만 결코 무음(無音)은 아니다.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눈이 쌓일 때에도 소리는 난다.
주변에 소리가 없어지면 자기 심장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다양한 소리를 취하게 되면 그 하나하나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다.
그것이 극한에 치달으면... 혹여...
혹여 그것이 바로...,
'소리가 사라진다'는 것?
자잘한 소리도 모이면 너무나도 시끄러워지고
그 소리가 극단적으로 커지면 아예 소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자꾸 저 내용이 생각났다.
내용 자체에 눈이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조용히 덮였던, 아니 덮여 있는 것처럼 보였던 사건의 아래에서
울부짖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인선과 그녀의 어머니도 그렇게 울부짖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체로 뭉그러져 묶였있을 때와는 다른 생생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이 소설은 너무나도 고요하다.
그 고요함이 나를 압도하는 느낌마저 든다.
이야기의 화자인 경하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글을 썼던 걸로 보인다.
노골적으로 그렇다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냈으며 '5월에 맞춰 출간 일정을 잡는 편이 마케팅에 더 좋을 거라고' 하는 걸로 봐서는 분명하다.
그 책을 내고 두 달 뒤부터 꿈을 꾼다.
꿈의 내용을 전해 듣고만 있어도 가슴이 너무나도 황망하고 답답해지는 그 꿈을.
그래서 그 꿈을 인선과 함께 표현해보기로 한 것이리라.
인선이 어떤 인물인지는 굉장히 서서히 알게 된다.
그 속도가 이 소설에서 느껴지는 고요함과도 굉장히 잘 어울려서 좋다.
그녀는 말한다.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이 말은 단지 그녀의 봉합한 손가락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정심의 마음의 상처에도 해당된다.
그냥 조용히 덮고 없었던 일인 듯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들은 그러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신들의 상처에 피를 흐르게 하고 상처를 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들의 마음이 썩어버릴 거라고 생각하고서.
그건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제주 4.3 사건과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자랐다.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했고 TV나 신문에서도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알게 된 광주 민주화운동과는 달리
'지슬'이라는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자연 경관이 너무 아름다운 섬이라는 이미지만 가지고 있던 제주였기에 그 충격이 더 컸다.
두 사건 모두 '도대체 왜?'라는 생각만이 내 안에 가득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죽인 걸까.
얼마나 대단한 악의가 있으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인간이 어떻게 같은 인간에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경하와 같이 인선의 안내를 받아 알아가게 되는 제주 4.3 사건의 처참함에서
눈 돌리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켜봐야만 한다.
'제대로 볼수록 고통스러운' 그런 것이어도 눈을 피하지 말고.
그때 내가 무사 오빠신디 머리가 이상하다고 해실카? 무사 그런 말밖에 못해실카?
정심에게 이것은 한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끊임없이 그 사건에 대해 조사해가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막상 그렇게 학살을 자행한 사람들은 어떨까.
빨갱이라 절멸시켜야 한다며 '빨갱이'가 뭔지도 몰랐을 임산부며 어린아이들까지 죽인 그들은
과연 무엇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천지 사방이 다 하얀 눈으로 덮힌 가운데 작은 촛불 하나에 의지해서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점점 더 현실과 이야기의 구분이 흐려지는 느낌이었다.
나와 이 책 사이에도, 소설 속 현재와 과거 사건 사이에도, 심지어는 삶과 죽음 사이에도.
그래서 인선이가 죽어서 영혼이 온 건지, 혹은 경하가 결국 유서를 써놓고 죽은 건지가 전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선이가 잠시 유체이탈하듯 영혼만 경하 곁으로 온 건지, 사실은 경하가 건천에서 잘못되어 보는 환상인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같이 만들려던 작품의 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 일지도 모르겠다.
담담하게 이어져가는 이야기 속에서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치가 떨리게 잔인했을 줄이야...
그리고 이렇게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었을 줄이야...
억지로 봉합된 상처가 썩어가게 두는 것이 아니라
아프고 힘들더라도 외면하지 말고 살펴서 제대로 나아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