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것은 이제는 초초함이 아닌 여유이다. 이미 끝나버린, 이미 다 이루어진 비극 뒤의 허탈한 여유, 끝났으므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죽음 앞에서 비로소 죽음의 환상을 깨뜨릴 수 있는, 깨뜨리고 난 뒤의 여유. 죽음 앞에서 비로소 숨을 가다듬고 살아야 할 명분과 살아야 할 힘을 얻어내는 이 부조리한, 뻔뻔스러운, 비인간적인, 그러나 지극히 인간적인 여유. -p.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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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독 죽음에 천착하는가,
아니 시인님은 왜 그토록 죽음에….?
죽음과 삶이 같이 태그되어 있는 것을 상기하며,
슈베르트 미뉴엣을 들으며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