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생각하자면 이해찬 선배의 부탁은 참으로 뻔뻔한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재기불능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국가보안법으로 복역중인, 단식 후유증으로 언제 실명할지도 모르는, 그 어떤 약속도 서로 한 적이 없는 남자친구를 출옥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니! 그런데 정작 나야말로 얼빠진 여자였다. 그 선배의 부탁에 ‘아, 엄주웅이 나를 정말 여자친구로 생각하는구나’ 싶어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둥실 떠올랐으니 말이다. 암, 기다리고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