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지옥 같은 곳에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섭기만 했던 형사들이 조금씩 인간의 얼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미국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 독일의 군인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전범 아이히만을 취재한 후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히만이 악의 화신이거나 유대인에 대한 특별한 반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에 충실한 보통의 모범시민이었기에, 가장 성실한 '악'의 수행자가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