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정체성을 바꾸기는 어렵다. 가령 피부색이라던가 성별.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피부색이 하얀색에 가까운 흑인으로 태어난 쌍둥이 자매 데지레와 스텔라, 그리고 그녀들과 비슷한 마을사람들. 그들은 흑인의 핏줄을 가지고 있지만 백인에 가까운 피부색을 지녔기에 그들을 모르는 마을밖의 외부인이 보았을 때 백인이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정체성을 선택하고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쌍둥이 자매 데지레와 스텔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스텔라는 백인의 정체성을 선택함으로써 백인으로써 가질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고 백인의 외형에 가까운 딸 케네디를 낳지만 정체성의 모호함과 혼란을 겪게 되기도 하고 거짓된 삶으로 인해 공허함과 함께 평생을 들킬지도 모르다는 불안 속에 살게 된다. 반대로 더이상 검을 수 없을 만큼 검은 피부의 남자와 결혼한 데지레는 남편과 똑같은 피부색을 지닌 딸 주디를 낳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딸과 함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그녀의 선택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받는 것은 그녀의 딸 주드였다. 흑인이지만 다 같은 흑인은 아니라는 마을사람들. 피부색이 백인에 가까운 마을사람들 속에서 주드는 차별과 따돌림, 폭력을 경험한다. 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란 케네디와 주드는 역시 서로 다른 인생을 선택하고 살아가게 된다.
소설은 피부색에 따른 정체성뿐만이 아니라 주드의 연인 루스를 등장시킴으로써 성별에 따른 정체성의 선택도 드러낸다. 여자로 태어났으나 남성의 정체성을 가진 루스.
타고난 인종이나 성별에 따라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존재는 자신의 선택과 결심에 따라 만들어나가는 것임을, 그리고 피부색이나 성별같은 표면적인 것보다는 더 본질적인 것(가족, 사랑, 휴머니즘)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실제로 흑인들 사이에서도 피부색에 따라 차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사실에 좀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