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책의 제목이 너무 처연하지 않나?
거기다 표지의 이미지까지 그런 느낌을 더하고 있었다.
그래서 약간은 처진 기분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책 초반부터 다짜고짜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이 불타버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거기다 그 화재는 방화로 추정되고 강력한 용의자로 '해리'가 지목되었다는 것도.
거기다 그 '해리'의 사진까지.
도서관이 불탔으니 당연히 그 안에 있던 수많은 책들도 불탔을 것이다.
책이란 불과 물 앞에서는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
수많은 책들이 잿더미로 변하는 광경을 생각하니 숨이 막힐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그렇게 처연했던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서관이 불탔고 그 범인을 잡아서 그의 범행임을 밝히는 내용이기에는 이 책이 너무 두꺼웠다.
이 책의 저자인 수전 올리언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이 이야기는 이 책의 주요 무대인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도서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희안한 책이다.
도서관이라는 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하는 것에서부터 미래에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다루면서도 그 사이사이 사서들의 이야기와 그들로 인해 도서관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풀어간다.
아마도 내가 평생 한 번도 가볼 일이 없을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동네 공공도서관과 그 시스템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여서 더 집중해서 읽었다.
어느 단체나 그렇듯 도서관도 어떤 수장을 맞이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꽤나 달라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밖에도 도서관을 단순히 책을 보관하고 대여해주는 공간 정도로 생각한다면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여러 문제들과 시대가 변하면서 같이 변해가야만 하는 도서관의 상황들에 대해서 나도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최초의 도서관에 여성은 입장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읽으며 어처구니가 없게도 했지만, 그간 사회가 꽤나 많이 개선되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저자는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이 사람에 의한 방화인지 재난과 같은 상황에 의한 화재인지를 확실히 결론 내지 않고 있다.
용의자로 지목되던 '해리'와 여러 가지 상황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결론을 섣불리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방화로 결론난 사건을 제대로 조사해봤을 경우 3분의 2 정도는 결과가 바뀐더라는 사실을 작가는 책의 말미에 덧붙여놓았다.
이 책은 차례에 따로 소제목 없이, 그저 숫자가 붙어 있다.
1, 2, 3... 이런 식으로.
다만 본문에서 보면 그 챕터 부분에 여러 책들이 나열되어 있다.
예를 들면 가장 마지막 장의 시작은 이렇다.
『이야기의 끝: 단막극』(1954)
리처드 토머스
822 T461
『이야기의 끝』(2004)
리디아 데이비스
전자책
『이야기의 끝』(2012)
릴리아나 헤커
시리즈: 비블리오아시스 세계 번역 시리즈
『이것이 결말이다』(2017)
잰 포춘
전자책
그리고 내용이 이어지는데, 그 내용과 인용된 책이 묘하게 연관성이 있다.
도서관에 대한 책이다 보니 책의 분류 기호가 표시되어 있는 것도 흥미롭고.
이 책을 통해 도서관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도서관의 시스템들 중 많은 것들이
우리 동네 공공도서관에서도 시행되고 있는 것이라 더욱 이해가 쉬웠다.
우리나라 전체가 이 정도의 시스템을 갖춘 것인지
아니면 우리 동네가 유난히 상황이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여러 군데의 공공도서관이 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