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에 완독을 했지만, 어찌됐든 독서기록을 남기기로 했고 북콘서트에 참여도 헀고 순차적으로 뭔가 잘 맞지는 않지만.
<훌훌>을 읽기로 선택한 것은 순전히 저자의 전작 <딸기우유공약> 을 우연히 아주 꼼꼼하게 읽게 되었는 바 문장들이 좋아서 더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즈음 작가를 확인하고 전율을 잠시 느꼈기 때문이다. (마치 이건 운명이다 류의 감정이라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는 것은 안 비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도 있었지만, 왠지 이 책은 사서 읽고 싶었다. 초록초록한 수채느낌의 표지도 마음에 들었고 왠지 이 저자가 쓴 책은 괜찮겠다,라는 나름의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이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인격을 갖고 있다면 <딸기우유공약>이 자라서 <훌훌>이 된 것 같았다. 최나현이 자라면 유리가 된다고 해도 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나는 문학관련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 서사가 어떻고 인물설정이 어떻고 플롯이 어떻고 하는 얘기들은 잘 모른다. 다만, 책을 열심히 열렬히 사랑하며 읽을 뿐인데, 읽다보면 문학이론들이 저절로 이해되는 지점이 생기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딸기우유공약>에서 받은 충격이 커서인지 <훌훌>은 조금 성긴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책을 읽은 목적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다. 동화 한 편을 그렇게 씹어 먹다시피 아예 죽을 만들어 먹을 정도로 정성스럽게 꼼꼼하게 읽은 경험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읽기 경험이 준 강렬한 느낌이 <훌훌>을 읽게 전도했다. 하지만, 문득문득, 숨어 있는 듯 찾게 되는 문장들은 '역시'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며 만약, 저자가 후속작을 쓴다면 안심하며 믿고 읽을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도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훌훌>은 본편의 내용도 잘 읽었지만, 작가의 편지, 작가의 말도 줄을 그어가면서 읽었다. '입양'을 소재로 쓴 글이라면 아무래도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슬픔, 불행을 쓰거나 쓴 글을 읽을 때는 여러 모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작가도 그런 조심스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북콘서트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조심스런 마음은 기본인데, 많은 사람들은 너무 바쁘거나 관심이 부족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은 저마다의 이유로 자주 잊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반응을 볼 때 당사자는 상처 아닌 상처를 받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마침 소설의 제목이 <훌훌>이기도 해서 이런 말을 하기가 부담이 덜 가기도 하는데, 서로가 너무 조심하고 너무 배려하다 보면 한 치도 걸어나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이미 일어난 불행은 불행으로 잘 정리하고 툭툭, 훌훌털어버리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겠지? 해서, 공감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무거운 족쇄를 발에서 끊어내라는 의미로 별로 공감하지 않는 얼굴을 하는 것 같다. 앞의 경우와 뒤의 경우는 질적으로 다르지만, 당사자는 똑같이 느끼기는 한다.
만약, 불행이 문학의 가장 좋은 재료라면 평범하게 다행인 사람은 평생 작품을 쓰지 못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했다. 어떤 계기로 이런 작품을 쓰고 자신을 성장시키고 현재의 자신을 만들게 되는지 나는 그 과정 과정들이 궁금했는데 콘서트에서 작가의 이야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