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된장찌개를 끓이는 장면이 한 페이지 넘게 그려져 있다. 이 책에서 음식은 특히 엄마와 얽혀 있는 음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읽어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외국사람들에게 이 글이 읽혀진다면 매우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나도 외국도서를 읽을 때 처음보는 향신료 조리법이 나오는 장면을 읽을 때 또 다른 의미의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떠오른 나의 된장찌개 레시피.
나의 된장찌개 레시피는 매우 간단해서 초등학생도 따라할 수 있다. 나의 레시피는 (역시!) 외할머니에게서 어깨너머로 내가 배워버린 것이다. 너 살림 좀 배워라, 하면서 각잡고 신부수업을 한게 아니라는 뜻이다.
엄마가 외갓집에 있으니 와서 저녁밥 먹고 같이 집으로 가자고 했던 날이다.
엄마의 엄마는 엄마의 딸이 벌인 만행을 엄마의 엄마에게 고자질하러 왔던 날이기도 했다.
엄마의 엄마는 한없이 귀여워만 해주던 태도에서 약간 냉정한 위치로 가 계셨고, 저녁을 먹어야 해서 집에 있는 아무거나 식재료를 꺼냈는데, 딱 된장찌개를 끓일 정도의 재료밖에 없었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물을 올려 놓고 물이 끓든 안 끓든 상관없이 된장 한 숟가락, 멸치 서너개, 호박 조금, 청양고추 두 개를 송송 썰어 한꺼번에 "때려넣었다". 그리고 끓기를 기다려 첫 번째 끓어 올랐을 때부터 1분 정도만 보글보글 끓이고 상으로 올려졌다.
나는 엄마의 엄마가 끓이는 된장찌개를 보는 순간, 이렇게 쉬운거였어?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당연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 후로 내 가족에게 똑같이 엄마의 엄마식 된장찌개를 끓여 내 놓는다. 결과는 항상 좋았다.
엄마의 엄마는 두 달 전에 백수를 누리시고 돌아가셨다. 엄마의 엄마는 딸의 딸에게 이토록 쉬운 된장찌개를 남겨 놓고 떠나셨다.
또 한가지! 엄마의 엄마는 "너, 내 딸한테 그러지마라~" 라는 말도 하셨다.^^ 그 순간부터 외할머니는 엄마의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