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니 마음이 약간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단단한 겉껍질이 생겼다고나 할까, 굳은살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엄마와 같은 파자마를 입고 병원 침대에 같이 누워 찍은 사진들을 삭제했다. 엄마가 내게 보내준, 미아 패로처럼 짧게 자른 머리를 하고 가장 힘든 일을 끝냈다는 듯 수줍은 얼굴로 찍은 사진도. 부엌 찬장을 정리하고, 흐트러진 코드를 모아 정리하고, 빛바랜 풍경사진을 버리고, 인화하지 않은 오래된 필름은 따로 챙겨두었다. 그렇게 정리하는 와중에 어디선가 엄마가 복용한 약과 섭취한 칼로리를 기록해놓은 초록색 스프링 노트가 튀어나왔다. 엄마를 어르고 달래서 처절할 정도로 억지로 목구멍으로 넘기게 해 필사적으로 만들어낸 그 숫자들, 희망의 기록들이 담긴 노트. 나는 노트를 박박 찢고 스프링을 홱 뽑았다. 어리석고 쓸모없었던 기록을 갈가리 찢으면서 목놓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