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이건 테라스가 아니고 베란다예요.
테라스는 일층에서 확장된 공간을 말하거든요. 여기는 사층이고 또 천장이 없으니 테라스가 아니라 베란다인 거죠. 베란다는 위층과 아래층 면적이 달라 생기는 공간이거든요. 또하나 헷갈리는 게 발코니인데, 극건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돌출 공간이고요. 사람들이 이 셋이 엄연히 다른건데도 자꾸 퉁쳐서 말하죠.
117~118. 주호는 처음 독서모임에섯 만났을 때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게이가 아닌 양성애자로 소개했고, 그 이후로도 이따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은 정체성이라는 건 변형되는 것이고 확장되는 것이며 언제든 재정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니까.
118. 젠더 다양성이나 해체를 운운하는 주호를 다들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가슴으로는 아니었고, 그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게 힘겹게 받아들인 정체성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경험이지 다시 혼란해지거나 불안해지는 경험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127. 어쩌면 이 사람은 윤범씨를 만난게 아닐까. 그날 이 사람이 만난 건 언제라도 연락해 만날 수 있는 윤범씨가 아니라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는 윤범씨가 아닐까.. 이 사람은 윤범씨에 대한 마음을 처분하거나 무효화 하지 않고 끝내 간직해보려는 게 아닐까.
133. 차라리 무성애자였으면 좋겠어. 아무 감정도 못 느꼈으면 좋겠고 누구도 사랑할 수 없으면 좋겠어.
139. 살아가는 일과 쓰는 일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게 좋았다.
소설과 삶이 서로에게 무용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 소설과 삶이 서로를 외면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것. 요즘 내게 점점 더 중요해지는 건 바로 이런 일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