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원영은 자기 일을 갖고 싶었다. 집을 갖고 싶다거나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여느 사람처럼 그랬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삼십삼 년 동안 그랬다.
18. 약속 장소에 오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가 치온은 무언가를 보았고 기분이 상했다고 했다. 화가 치밀었다, 속으로 욕을 하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버렸다. (중략) 이유가 기억나지 않았다. 분노감만 남아 있었다.
19. 이제 지유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잊어서는 안되었던 무언가가 아니라, 중요한 것을 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27. 없는 얘기를 지어내려는 지유가 원영은 탐탁지 않았다. 아무 문제가 없는 곳을 문제가 있는 것처럼 쓰면 안된다고 여겼다. 초파리 실험동은 원영의 꿈이 이루어진 곳이었다. 어째서 지유가 나쁜 방향으로 이 이야기를 쓰겠다고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32. 이팝나무 꽃잎은 이ㅡ 발음할 때처럼 길쭉하게 생겼고 조팝나무 꽃잎은 조ㅡ 발음할 때처럼 동그랗게 생겼어요.
36. 지유의 소설 속에서, 원영은 초파리를 들여다봤다. 초파리가 아름답게 표현돼 있었다. 이 소설에서 원영은 결말 부분을 가장 좋아했다. 모든 것이 초파리와 실험동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38. 가장 시시한 문장으로 지유는 소설을 끝맺었다. 이원영은 다 나았고, 오래오래 행복하다.
42. 소설을 쓰는 일이 내가 원하는 세계를 지켜내는 일이라 믿은 적이 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세계는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