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결말’이라는 말을 다르게 말한다면 ‘행복한 마음’이 아닐까. 사실 결말은 단지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서 이야기를 읽는 사람의 마음이 ‘결말’이라는 단어 앞에 어떠한 수식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초파리 돌보기>를 읽었을 때, 결말에 대해 원영의 억지가 개입되었다고 생각했다. “칼을 휘둘러 살인을 시도하거나, 가까운 누군가가 죽거나, 직장에서 해고를 통보받거나, 혼자 고독하게 방에서 쓰러지던 인물”(31쪽)을 등장시키며 소설을 쓰던 딸에게 원영이 깨끗하게 낫는 결말을 쓰라고 하다니. 어쩌면 이러한 부탁은 그동안 지유가 써 온 소설에 대한 무례한 행동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다시 한번 더 읽고, 작가의 말을 읽었을 때 나의 생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원영이 실제로 깨끗하게 나았다고 믿지 않는다. 천일염으로 양치를 하고, 마사지를 하고, 기적의 음파 동영상을 틀어두는 것으로 어떻게 병을 치료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누군가는 이러한 결말을 읽고 원영이 정말 회복했다고 믿을 수도 있다. 결말은 독자의 마음에 따라 바뀐다. 아주 상대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지유 또한 억지로 행복한 결말을 썼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 노트에 쓰인 것처럼 단지 지유는 원영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