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김지연
p.170
-하지만 공원은 공공의 장소라는 뜻에서 공원이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곳. 그러나 내게 공원은 더이상 공공의 장소가 아니었다. 공공이라는 말에 내가 포함될 수가 없었다....사전에서 나와 관련된 단어를 발견할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도 그래서였다. 그건 나를 포함하는 단어여야 하는데도 나를 배제해버린다.
p.173
-문득 나는 내가 사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처음에는 너무 뜬금없고 이상한 감정처럼 느껴졌는데 점점 선명해졋다. 뜻대로 된 적은 별로 없지만 나는 사는 게 좋았다. 내가 겪은 모든 모욕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내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 그렇게해서라도 사는 건 좋다. 살아서 개 같은 것들을 쓰다듬는 것은 특히나 더 좋다.
p.174
-개 같은 것들, 개 같은 것들, 개 같은 것들. 나는 그 말을 계속 되뇌었다. 되뇔수록 그 말은 내 속에서 박살나고 뭉개져서 원래 통용되는 의미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다른 의미로 조합되었다. 나는 개를 쓰다듬었다. 개의 이름은 토리이고 토리는 아주 사랑스럽다. 그것이 아주 개답다고, 개 같다고 생각했다.
p.177(작가노트)
-이 소설은 빈칸을 생각하면서 썼다. 나에게 빈칸이 주어졌을 때 그 자리를 어떤 말들로 채울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일차적으로 내린 결론은 무엇이든 쓸 수 있다. 빈칸에 절대 들어가면 안 되는 말도 있긴 할 텐데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끝없이 생각하면서 목록을 갱신해나가야만 하지 않을까. 사전이 실제 삶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더라도.
단어가 갖는 이중적인 의미에 대한 부분들과
그것을 되뇌이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