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저녁때가 되면 할머니 방 돌침대에서 빈둥거리기를 좋아했다. 엄마가 할머니 곁에 말없이 누워서 한국 퀴즈 프로그램을 보고 있고, 할머니는 줄담배를 피우거나 큰 식칼로 배 껍질을 끊지 않고 한번에 깎는 모습을 문간에 서서 물끄러미 지켜 봤던 기억이 는다. 할머니는 과육을 자르고 남은 과심을 알뜰히 베어먹었고, 엄마는 온전한 조각만 집어먹었다. 집에서 엄마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시에는 엄마가 미국에서 지낸 모든 시간을 벌충하려 애쓰는 중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여인이 내 엄마의 엄마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때인데, 두 분의 관계가 평생토록 우리 애착 관계의 모델이 되리라는 걸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