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여민

2023.09.20 월
197쪽 / 340쪽

그것은 어느 박물관이든 제일 첫 관에 배치하는 단순한 형태의 토기였는데, 가마의 불 속에서 엉거주춤 내려앉은 형태였다. 못 쓸 정도로 망가진 것은 아니고 윗부분이 모호하게 찌그러진 형태였는데 아마 토기장인은 '에이, 만든 김에 그냥 쓰지, 뭐' 정도로 넘겼을 것이다. 그 실패작이 천오백 년을 살아남아 박물관에 자리잡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고 말이다. 훨씬 잘 만든 토기가 많았을 텐데 하필 그 토기가 발굴되고 보존되어서 유리함 안에 전시된 걸 4세기의 토기 장인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 황당해하고 민망해 할까? 천오백 년짜리 유머였다. 알아채고 웃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시간의 시시한 웃음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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