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
읽는 사람은 결과를 아는 상태에서 읽고, 쓰는 사람은 예측 불허 상태에서 쓰고 있다. 이 뒤집힌 정보 불균형 속에서, 모르면서 쓰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한나 아렌트의 표현에 의하면, 현실 정치의 장은 '견해들 doxa'의 영역에 속한다. '진리'의 영역이 아니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말들'의 경연장이라는 뜻이다. 하긴 '진리'는 의사소통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스스로를 관철할 뿐이다. 그러므로 권력을 소유한 정치가가 '진리'를 제 것인양 전유하고 참칭하는 순간은 곧 억압과 폭력과 파시즘이 발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한때 정치적 무관심을 타파해야 한다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정치적 열광과 팬덤과 광기가 오히려 문제라고 말하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연상호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어떤 지옥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은 과잉 커뮤니케이션의 지옥이다. 광기에 찬 목소리로 단죄를 외치는 유튜버의 고함과 미친듯이 올라오는 댓글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과잉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희화화된 지옥도라고도 말할 수 있다.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다수결 선거제 아래서 집권은 언제나 중도적 정당만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시간 속에서 쇠락하여 유니라 돌로 돌아갈지언정, 우리가 보석이라고 믿었던 시간이 그래도 조금씩은 역사를 재구성했던 것이라고. 상호주관성의 지옥으로 가는 길을 상호주관성의 천국을 향해 조금은 돌려놓았던 것이라고. 그것이 아주 작은 각도에 불과할지라도. 그 천구에서, 연옥에서, 우리의 영혼 속에서, 다시 악마들이 태어난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