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님은 「작별」이라는 단편 소설로 내게 인상이 깊은 분이다. 눈떠보니 눈사람이 되어있던 여자의 이야기. 아들을 보러 집 안에 들어갈 수도, 사랑하는 남자의 손을 잡을 수도 없던 여자의 이야기. 소설의 배경도 소재도 굉장히 차가운 것 뿐인데, 이상하게 글을 읽는 내내 포근한 느낌이었다.
다음으로 읽은 소설 『소년이 온다』는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라는 한 문장이 내내 시렸던 책이다. 까만 바탕에 놓인 안개꽃이 아물지 못하는 사람들 같아 표지부터 슬펐던 책. 아직 독후감조차 채 기록하지 못한 채 사진으로만 내 앨범에 남아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책은 작가님의 신간이라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적어둔 책인데, 후다닥 읽기 아쉬워 내내 묵혀뒀다. 이번 'zoom in'을 읽으며 그랬던 것이 후회됐다. 꼭 책을 읽고 작가님의 초상을 다시 읽어봐야지.
'더이상 새벽에 일어나 초를 켜지 않아도 된다.', '살갗에서 눈이 녹는 감각을 기억하려고 손이 빳빳해질 때까지 눈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산 사람들보다 죽은 사람들을 더 가깝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 (모두 p.79). 각 구절로 작가님이 소설에 얼마나 몰두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헐벗은 나를 채우기 위해 다시 소설을 쓸 작가님이 기다려진다.
'그렇게 덤으로 내가 생명을 넘겨받았다면, 이제 그 생명의 힘으로 나아가야하는 것 아닐까? 생명을 말하는 것들을, 생명을 가진 동안 써야 하는 것 아닐까? 허락된다면 다음 소설은 이 마음에서 출발하고 싶다.(p.88).
작가님의 소설은 뭔가 차갑고 어두운 매력이 있다. 새싹이 찾아나고 파릇파릇한 느낌이 뭔가 어색하긴 하지만, 한강 표 생장 소설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