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를 전공하고 박물관에 취직해서 유물 복원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고자 나름 노력도 한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처했던 상황에서 최대한 할 만큼 해봤다고 생각했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너무 쉽게 포기했구나 싶다.
이번에 읽은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의 저자는 보존복원 전문가이다.
자신이 어떻게 그 길로 가게 되었는지, 그 일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담담히 풀어놓는다.
도예과에서도 기본적으로 '재료학'을 배운다.
수학은 커녕, 산수도 잘 못해서 이과 쪽 진로는 꿈도 못 꾸어본 채 아예 예체능으로 빠졌던 내 입장에서 '재료학'은 정말 어려운 과목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고등학교 때 '화학'과목은 배웠던 지라 어찌어찌 재료학 수업을 따라는 갔던 것 같다.
멋진 도자기를 만드느냐 아니냐는 결국 기술이나 손재주가 아니라 '재료학'에서 판가름 났던 것 같다.
도예와 화학이 무슨 상관이냐 싶었지만, 유약부터 흙까지 그 성분을 알아야만 원하는 색과 형태를 만들 수 있었다.
심지어 백자로 유명하셨던 모 교수님께서는 심지어 화공학과 출신이셨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보존복원술에서도 화학이 중요하다고 할 때 정말 공감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예술품을 보존, 복원할 때 어떤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예술이란 과연 무엇이고 왜 만드는 것인가를 묻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백남준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책을 읽고 있는 내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유럽에서 복원이 완료된 건축물 사진을 보며 충격을 받기도 했다.
새롭게 조각이 들어갔는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기존의 조각들과는 색상이 달랐다.
내 기준으로 보면 복원이 덜 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그렇더라도 또 시간이 흐르면 결국은 새롭게 넣은 조각도 색이 바래서 전체적으로 색이 맞춰질 거라고 하는 문장에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의 복원은 너무 속전속결로, 새것 같은 느낌이 나게 이뤄진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나 역시 지금 당장 보이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복원이라는 것을 생각했던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또 하나, 막연히 복원 작업을 거친 작품은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부끄러웠다.
가치가 떨어질까 봐 복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작품은 분명 문제가 있는 상태이니 가치가 떨어진 상태일 것이다.
예술 작품을 나름의 순결주의(?)로 재단하려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한 이후 작품에 누군가가 손을 댄다면 그 이유를 막론하고 그 작품은 이제 순수한 그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작품에 문제가 생겼다면 당연히 복원을 해야겠지만, 하나밖에 없는 작품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대한 신중하게 복원해야 한다는 것에도 당연히 동의한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직접 가서 봤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 무려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복장을 입은 근위병들을 보며 설렜는데, 막상 성당의 천장 벽화는 너무나도 새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뭐지? 누가 페인트로 엊그제 그린 것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이 느낌은?
얼마 전에 천장 벽화를 일본에서 돈을 대서 깨끗하게 한 번 청소(?) 했다더니 그래서 이 모양인가 보네 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일본인만 천장 벽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사진을 찍으려면 몰래 찍으라는 가이드의 안내도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일본인이 아니라 일본 NHK의 권리였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왜 그런 예전에는 흔했던 직접 그린 극장 간판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에 대해 거의 20여 년 만에 알게 되었다.
자연도 예술품도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모르는 건 그냥 남겨뒀다가 잘 할 수 있게 될 때 손대는 것.
지금 당장 뭔가 완벽하게 마무리되어 그럴듯하게 보이게 해놓는 것보다는
그런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보존복원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나저나 작품을 복원을 하는 장면을 직접 보고 싶어진다.
김겸 작가님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같은 것이라도 있는지 한 번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