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복원가가 다루는 유물이나 작품은 모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유물을 치료하고 돌보는 행위는 유물을 이루는 물질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물질의 특성과 변화를 규명하는 학문이 화학이므로 화학을 알지 못하는 복원가는 인간의 몸을 이해하는 학문인 생리학이나 약리학을 공부하지 않은 의사와 같다. 그러니 내가 화학을 공부하지 않고 보존복원을 하던 때는 어설프게 의사 흉내를 내던 시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