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 개별적인 존재이다. 모든 환경과 경험도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경험은 있지만 똑같은 경험은 없다."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첫마디는 '나는 너를 모른다' 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다. 단독성은 곧 분리성을 의미한다. 여기에 내가 있고, 거기에 네가 있다. 우리는 때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건을 마주하지만, 그것은 결코 같은 경험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분리되어 있으니까. 그것은 각자에게 다르게 감각되어 다른 경험이 된다. 즉, 아무리 내가 너의 상황이 되어본다 한들, '나는 여전히 너를 모른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위로가 필요해서 찾아온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나보다 오랜 세월을 산 사람의, 내가 겪지 못했던 삶을 들어줄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른인 척하느라 그 사람과 마주앉았다. (···)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춥지 않게 옷만 덮어주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럼 분리된 나와 네가 서로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즉 자신이 살지 않은 삶을 듣고 함께 견뎌주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책을 통해 한지혜 작가는 자신의 상처를 스스럼없이 보여주어 독자와의 소통의 장을 연다. 그 상처는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상처이며 숨기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또 치료받아야 할 것이라고 당당히 드러낸다. 한지혜 작가가 만든 이 장소를 통해 연대는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 개방된 공간에 펼쳐둔 한지혜 작가의 상처를 바라보면서 각자의 상처를 되새기는 것으로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것이다.
이렇게 독서를 통해 우리는 겹쳐질 수 있다. 내가 영원히 헤아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되던 타인의 삶이, 그 타인의 글을 읽음을 통해 내 위로 조금씩 내린다. 견디기 버거운 삶이 쌓여간다. 비록 "못나고 더럽고 가난하고 지저분한 얼굴"일지라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내린다. 포개진다.
책을 읽으며 창밖에 눈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책장을 넘기고 있을 때 이미 눈은 시작되고 있었다. 내가 당신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우리가 다시 나를 위로하는 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