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일부러 외면한 면도 있었다. 끝을 안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이야기의 결말과 상관없이, 세상의 모든 마지막 페이지에 찍힌 마침표 속에는 너무 깊은 고독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단지 점일 뿐인 그 마침표 뒤, 더이상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주는 적막감, 그곳에 나 혼자 남겨두고 어디론가 모두 떠나버렸다는 느낌, 그리고 계속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 앞에서의 막막함. 마지막으로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 죽음과도 같은 끝의 침묵. 그것은 종이 위로 난 또다른 창문의 정서였다. 나는 아직 그것까지 노트에 옮겨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첫 페이지의 끝나지 않음과 끝날 리 없음에서 비롯되는 가득함이 좋았다. 젖은 길을 걸으며 나는 이 말을 그에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