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며 해주의 입장을 생각해봤다.
한숨조차 내쉬지 못할 만큼 갑갑한 상황이다 보니, 책을 읽는 나까지 작은 상자에 갇힌 느낌을 받았다.
잠조차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는 그런 상황에서도 해주는 버티고 있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도대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자그마한 희망이라도 보이면 견딜 수 있으련만 지금의 상황이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지옥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해주에게 그나마 도움을 주려는 사람은 재개발 지역에서 같이 버티며 옆에서 목공예를 하고 있는 재하 정도다.
그 재하도 해주와 같이, 상황에 의해 억지로 떠맡겨져서 목공예를 하고 있다.
둘 다 갑갑한 상황이지만 그나마 재하 쪽이 조금 나아보긴 하지만.
그런 해주의 삶에 어느 날부터인가 '우산 씨'가 들어온다.
그는 처음엔 구조물처럼 해주의 시야 안에 들어있을 뿐이다가, 바쁠 때 조금이지만 해주를 돕는 위치에까지 이르게 된다.
해주를 마음에 두고 있는 재하의 날선 반응에도 물러서지 않으며, 누군가가 그놈의 우산 좀 접으라고 윽박을 질러도 끝끝내 자신의 우산을 접지 않는 '우산 씨'.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개진하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의 말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기도 하고.
나중엔 그 우산이 부서져서 제대로 된 우산의 기능을 못하게 되었어도 그는 결코 우산을 접지 않는다.
그는 왜 항상 하나의 우산은 펼쳐서 들고 다른 하나의 우산은 들고 다니는 걸까.
싸오는 도시락을 보면 먹고사는 걱정을 해야 하는 형편 같지는 않지만, 도대체 돈은 언제 뭘 해서 버는 걸까.
우산 씨에 대한 여러 의문들 때문에 끝까지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을 끝까지 읽는다고 해도 우산 씨에 대해 처음보다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마지막에 이젠 됐다는 산뜻한 마음인 건지, 자발적으로 우산을 접긴 한다.
하지만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한 건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선 그의 행동의 이유가 중요한 건 아닌 것이다.
그가 자신의 기다리던, 혹은 목표로 했던 무언가를 이뤘기에 우산을 접을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전까지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켜냈다는 것도.
해주와 우산 씨는 비슷한 정서를 지녔기에 별다른 큰 사건이 없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해주가 시험 삼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줬던 '창문'에 대한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상황에까지 이르게 한 해주 엄마가 가출한 이유를 들었을 때는 뭔가 탁 놓아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남은 사람들이 추측했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어쩌면 너무나도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이유.
살 맞대고 살던 가족들끼리도 서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할 수 있는지를 봤고, 그래서 조금은 무서웠다.
엄마의 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 가족 모두는 얼마나 참혹해졌나.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궁금해진다.
적당한 거리의 인간관계라는 건 어떤 걸까.
적당한 거리는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걸까...?
우리는 각자, 펼쳐진 우산 하나 정도의 공간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서로를 멀리하며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드디어 내가 그 곁에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에만 그 거리를 접는 거고?
지금 내 주변엔 자신의 우산을 접고 자신의 공간을 내게 허락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책을 다 읽었는데도 궁금한 것이 너무 많이 남는 것, 그것도 소설의 묘미인 걸까.
그것은 이 소설이 나와 적당한 거리를 잘 유지한 채로 마무리되었다는 의미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