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중이라 가볍고 짧은 호흡의 책을 기분 전환 삼아 읽고 싶어 찾던 중에 마침 북클럽문학동네에서 소개해 준 독파 챌린지가 생각나 독파 챌린지의 1월 책인 커트 보니것의 미발표 단편소설집인 '세상이 잠든 동안'을 선택해 챌린지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것을 느꼈는지 들어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커트 보니것은 미국의 풍자가로 유명하다. 이 책에는 그만의 블랙 유머 스타일의 단편 소설이 총 16개 수록되어있다. 어떤 편은 메세지를 내가 잘 캐치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고 어떤 편은 감탄하며 읽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고 잘 빨려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16개의 단편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은 마지막 편인 사기꾼이었다. 처음에는 상업적이고 현실적인 스테드먼의 입장에서 그가 스스로는 형편없는 예술의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아내는 취향이 저급해서 스테드먼이 최고의 화가라고 생각하며 추상적인 관념화의 대가인 라사로의 그림을 혹평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소설은 돈은 없지만 순수미술에서 평론가들의 사랑을 받는 라사로가 사실은 자신은 스테드먼처럼 사실적인 그림을 그릴 능력이 없으며 어쩔수 없이 추상적으로 밖에 그리지 못하는 그림이 사랑을 받고 있어 본인이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는 대목에서 양상이 완전히 달라지며 몰입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 라사로의 아내는 관념과 영혼이 없이 공장처럼 사실화를 찍어내는 스테드먼의 그림을 혹평한다. 그렇게 스테드먼의 아내와 라사로의 아내는 상대방 남편의 그림 정도는 자신의 남편이 안 그리는 것이므로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그려낼 수 있다고 믿고 내기를 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그 둘은 자신의 바닥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상대방을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밤새 그림을 그리다가 지쳐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림을 완성한 후 새벽에 몰래 그 둘은 서로의 작품을 교환한다. 아침에 그림을 확인한 아내들은 모두 자신의 남편이 그린 그림이라 생각하고 상대 그림을 비방하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이 가진 무기의 정수인 그 작품을 다시 되찾고자 서로 재교환하며 소설이 끝난다.
30페이지도 되지 않는 짧은 소설이었지만 그 속에서 양 극단에 있는 화가의 겉으로 드러나는 상반성과 그 내면에 있는 동질성(자기비하와 자기인식)을 계속해서 교차하며 드러나게 한다. 또한 당사자들을 벗어나 관광객과 평론가의 취향차이처럼 그들의 아내가 본인 남편의 그림을 진정한 예술이라고 믿으며 예술에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취향이 있는 것처럼 보여주지만 결국 자신이 믿었던 남편의 예술의 정수가 상대방에게 가자 가차없이 혹평을 가하는 모습에서 인간 내부의 비일관적이고 비합리적인 모습을 풍자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우스꽝스럽고 생각이 짧은, 혹은 너무 깊은 인물들을 통해 재미있게 소설을 읽으면서도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해하며 내 생각이 너무 갇혀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짧은 단편 안에 반전을 통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속았다는 생각을 들게 하고 그런 생각에서 나 역시 이 소설에서 풍자하는 우매한 대중은 아니었을까, 겉으로만 인물을 판단했던 건 아니었을까하고 느끼게 되는 충격이 예전에 읽었던 오헨리 단편선을 생각나게 했다. 메세지를 이야기 안에 담아 가벼운 농담같으면서도 그 속에 뼈가 있는 내용이 블랙 스탠딩 코미디쇼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