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와이너의 책은 이번에 처음으로 읽어봤지만, 이름은 익숙하다.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전에 구입해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작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천재의 지도'라는 책 제목만 읽었을 때는
김정호 같은 천재가 만든 '지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다.
그건 내가 천재를 지도에 표시할 수 있다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안 에릭 와이너는 천재는 유전적인 요소로 인해 태어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느 일정 시기, 아테네에서 많은 천재들의 군집이 나타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아테네 이외에 그렇게 천재들이 나타나는 장소로 항저우, 피렌체, 에든버러, 콜카타, 빈, 실리콘밸리를 꼽았다.
이 일곱 장소가 이번 '천재의 지도'에서 다루게 될 7 장소이다.
그렇다면 왜 그 장소에서, 왜 하필 그 시기에 천재들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시기도 중요한 것이 현재의 아테네에는 고대의 아테네와는 달리 천재들이 무더기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인 에릭 와이너는 아홉 살짜리 딸의 아버지이다.
그는 이 책을 자신의 딸을 위해 기획하고 써나갔다고 밝히고 있다.
즉, 대량의 천재들을 만들어낸 곳들의 비결을 알아내어 자신의 가정에 적용시켜보고자 했던 것이다.
비록 자신은 '너무 늦어서' 천재가 될 순 없겠지만 이제 아홉 살인 딸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가 후기에서 밝힌 그 적용 예들이 재미있다.
그중 몇 가지만 옮겨 적어보면...
무엇보다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를 두루 제시한다.
때로는 '제약의 힘' 때문에 장애물을 던진다.
소크라테스처럼 바보 시늉을 하며 딸에게 '뻔한' 질문을 던진다.
항저우의 시인 황제처럼, 말로만 창조성을 설교하지 않고 직접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려고 애쓴다.
메디치가처럼 딸에게 '어울리지 않는' 임무를 맡긴다.
이 책은 천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당시 그 지역의 비결을 하나하나 알아나가는 책이다.
아테네에서는 사람들이 걸으며 주제에 금기를 두지 않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이 비결이라 정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하면 흔히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과 연결 지어지며 유머 코드로도 사용되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저 문장이 그리 간단치 않은 문장임을 알게 된다.
사람은 물론 타고난 기질이나 지능, 능력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태생적인 것만큼이나 환경적인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의 환경은 자연환경도 있겠지만, 그 사회의 분위기나 문화와 같은 것을 주로 이야기한다.
사실 에릭 와이너의 딸은 입양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유전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도 책 초반에 밝히고 있다.
작가는 아테네 이외의 장소에서는 부와 자유, 그리고 불확실성,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한 욕구, 쌍방 소통의 교육, 그로 인해 지식에 얼마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가 등으로 창조성의 비결을 추려내고 있다.
각 지역들을 여행 다니는 느낌으로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작가와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종종 헛다리도 짚어가면서.
작가와 함께 글로 여행한 장소들에 언젠가 직접 가서 피부로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어쩌면 천재를 만드는 요소들은 너무 뻔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결을 알고 보면 사실 내가 몰랐던 건 없다.
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일상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중요하겠지.
아! 브레인스토밍과 오픈형 사무실이 그다지 창조력을 높여주지 못한다는 건 이번에 처음으로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그전엔 나같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사람만 그런걸 싫어하는 줄 알았지.
이 책을 읽고 아쉬운 점이라면 각각의 이야기들은 꽤 재미있게 읽히지만 작가가 너무 이야기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끼워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거다.
그 도시나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 한 둘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에서 모든 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도 좀 수상쩍고.
거기다 그가 선정한 천재와 지역에 전부 공감하기 어렵다.
그가 선정한 천재와 지역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빠트린 천재와 지역이 너무 많아서.
예를 들어보자.
그는 기존의 어떤 문자와도 상관없는 새로운 문자, 배우고 사용하기도 쉬운 '한글'을 만들어낸 '세종대왕'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 시대에 나타난 대단한 인물들도.
아무리 내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인류 역사상 세종을 천재에 넣지 않았다니, 인정하기 어렵다.
물론 그 시대도 그가 말하는 여러 조건에 부합할 것이라 '이하 생략' 한 것이라는 답변을 받으면 할 말은 없지만, 그의 지식이 광범위하지는 않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그리고 흥미롭게 진행되던 이야기의 결론이 '자신의 딸 천재 만들기'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며 이 책이 자기개발서의 일종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자기개발서'.
고민이 된다.
같은 작가가 집필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읽어봐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워낙 많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