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한국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잘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최근에 우리가 받고 있는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었을 테니까.
그래서 판사가 쓴 책도 그다지 읽고 싶지 않았다.
뭔가가 싫어지면 관련된 것들까지 다 싫어지지 않던가.
하지만 독파의 추천 도서였기 때문에 한 번 읽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책을 펼쳤더니 문유석 작가의 친필 서명까지 있다.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마음이 조금은 풀어진 상태로 읽기 시작했다.
일단 이 책에 대한 내 솔직한 감상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헌법의 정신이나 법을 집행하는 마음가짐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 재미있다니.
무엇보다 어려운 문장이 없다.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게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다.
작가는 법이란 선과 악을 분명히 가리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그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는 끝없는 협상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협상의 결과는 항상 '인간의 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만든 법을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일관적인 판례가 중요하다고도 말한다.
누구나 법이란 이렇게 적용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벌은 죄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자유에 대한 제한'이라는 설명에서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벌이 죄의 대가가 아니었다고?
사형제도 찬반에 대한 관점도 조금 달라졌다.
'당신은 사람을 죽이는 정부가 있는 나라에 살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허를 찔린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조차 이렇게 인간의 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집행되고 있는 법이
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왜 법이 정치의 영역까지 넘어온 건지에 대해서도.
법이 최대한 잘 적용되었을 경우의 장점은 알겠지만,
그 법을 적용하는 인간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물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헌법이 바로 사회에 적용되는 것이 아닌 인간을 거쳐 적용된다면
그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대한 대비도 당연히 해놨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아쉬움은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하게끔 해주는 작가의 글 솜씨에 감탄했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특히 '판사 유감'이라는 책은 어쩌면 이 책에서 해결하지 못한 나의 질문을 풀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