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네요. 오래전 돌아가셨어요. 할머니의 전화번호 수첩을 가지고 있어요. 이북이 고향이신 할머니는 공부가 하고싶어서 집에서 도망쳐 선교사에게 한글을 짧게 배우셨어요. 다시 집으로 소환되어 당시 늦은 나이 열여덟에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고 1.4후퇴때 피난을 내려오셨어요. 전쟁으로 남편과 자식을 잃고 가혹한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지만 할머니에게는 초연함의 성품이 있었고 하이개그를 구사하셨지요. 박카스와 라일락을 좋아하셨구요. 오후의 언제쯤이 되면 할머니는 담배를 맛있게 태우시고 박카스로 목을 축이셨어요. 막내딸의 막내딸인 제게 박카스 한목음을 늘 남겨주셨어요. 그 할머니의 친필 전화번호 노트를 가지고 있어요. 삐뚤한 글씨지만 또박하고 대범해요. 특히 숫자를 한글로 쓴 부분이요. 할머니가 자랑스러워요. 사랑하구요. 이루 말할수 없이 잊을수 없이 사랑해요, 언제까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