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는 그렇듯 버텨내는 자들에게 기꺼이 복을 약속하지만 소설은 무엇도 약속할 수 없어 이렇듯 길고 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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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실패가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삶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용인하면서 계속 버티자, 힘내자고 말해주고픈 작가님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응원 메세지.
> 영웅이 "누나, 난 종일 한 번도 안 웃기 내기를 해"라고 했다. 평소에 습관처럼 히죽히죽거리던 녀석이라 나는 당황했다.
"누구랑?"
"나 자신이랑."
"왜?"
"웃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왜 웃으면 안 돼?"
영웅은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웃으면 정말 멍청한 사자 같은 게 될까봐"라고 했다. 어쩌면 그 말을 들었던 그 순간에 나는 슬픔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되지 않았을까. 마음이 차가워지면서, 묵직한 추가 달린 듯 몸이 어딘가로 기우는 느낌이었다. 어느 쪽으로? 여태껏 가늠하지 못한, 그럴 필요가 없었던 세상 편으로, 이를테면 영웅이 사자가 되고 싶다며 더는 헤헤거릴 수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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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는 영상을 찍어서 그걸 직업으로 삼는 일보다 간직하는 일에 더 열의를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그건 어느 면에서나 실패가 아니라고.
"그래, 실패는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면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이름을 붙인다고?"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사표랑 낸 것과 너가 더이상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를 하지 않는 것."
영웅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한동안 생각하더니 "글쎄, 그런 건 인생을 더 깊이 용인한다는 자세 아닐까?"라고 결론 내렸다. 영웅의 그 말은 그 무렵 읽고 있던 볼테르의 책과 함께 내가 힘껏 잡고 놓치 않는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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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영초롱과 복자보다 나는 영웅이의 말 한마디에 더 감정이입을 했다. 더 이상 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영웅이...나 또한 세상의 이면을 만나고부터 어린아이처럼 헤헤거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영웅이를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시렸다.
그러나 그런 지난한 자기 삶이라도 참고 받아들인다는 영웅이의 말에서 '어! 나도 그러고 싶다'고 느끼며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 영웅이의 마음가짐에 '농담은 우리의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양말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복자처럼 농담, 재미, 유머로 평온한 나날들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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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책 속 인물들처럼 힘든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가님 옆에서 같이 넘치도록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