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8.Sat.>
"웃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왜 웃으면 안 돼?"
영웅은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웃으면 정말 멍청한 사자같은 게 될까봐"라고 했다. 어쩌면 그 말을 들었던 그 순간에 나는 슬픔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되지 않았을까. 마음이 차가워지면서, 묵직한 추가 달린 듯 몸이 어딘가로 기우는 느낌이었다. 어느 쪽으로? 여태껏 가늠하지 못한, 그럴 필요가 없었던 세상 편으로, 이를테면 영웅이 사자가 되고 싶다며 더는 헤헤거릴 수 없는 세상. 우리의 대화는 잠시 끊겼다. _p.15_
그 역시 여덟 번이었지만 나는 더이상 정정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가기로 결심했다. 이제 나는 슬픔에 대해 완전히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슬픔은 차갑고 마음을 얼얼하게 하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 그만한 선택이 없었다. _p.17_
하지만 그때 고모는 누구보다도 연륜 있고 나이가 많게 느껴졌다. 서른 살이란 이십대의 형형한 에너지가 약간 순화되었을 뿐 여전한 활기와 발산을 간직한 때가 아닐까. 마치 새잎과 꽃의 계절인 봄을 보내고 본격적인 성장의 시간을 맞은 초여름의 식물들처럼. 하지만 고모는 정물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화분 속 식물처럼. 나름의 푸름으로 자족하지만 외롭고 단조롭고 분명한 고립이 있는. _p.29_
복자는 그런 제순이의 눈썹이 일종의 농담 같은 거라고 했다. 그리고 농담은 우리에게 일종의 양말 같은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의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것. 농담을 잘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하루가 활기차다고도 했다. _p.81_
왜 뭔가를 잃어버리면 마음이 아파?
왜 마음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아파? _p.100_
그날 그 주공아파트 단지의 연못에서 들었던 왁왁 하는 개구리 소리를 울분 속에서 떠올리다보면 어느새 그날의 그 풍부한 감정들은 사라지고, 뜯기고 발린 채 비닐봉지에 툭툭 던져지던 닭뼈 같은 모멸감만 남기도 했다고. 나는 그런 기분을 잘 알았고 그 시절의 나 역시 그랬다고 말하고 싶었다.
"누가 누구에게 뭐라 대답할 수 없는 데는 너무 많은 이유가 있는데 우리는 그것에 대해 다 설명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아주 길고 긴 답변서를 써보고 싶네요. 어느 잘나가는 로펌이 제출한 답변서만큼이나 길고 긴 답변을요." _p.125-126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