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의내가 K시에서 첫눈을 향해 손을 내밀고 서른 살의내가 서울의 천별을 자전거로 달리며 소낙비에 젖었을 때, 칠십 년 전 이 섬의 학교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암탉과 병아리들이 날개를 퍼덕이는 닭장에 흙탕물이 무섭게 차오르고 반들거리는 황동 펌프에 빗줄기가 튕겨져 나왔을 때, 그 물방울들과 부스러지는 결정들과 피 어린 살얼음들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법이, 지금 내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것들이 아니란 법이 없다.'_p.136
2부가 어떨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4.3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폭력과 상흔에 대한 이야기가 흔하다면 흔하겠지만, 그건 그만큼 '일반적인' 삶을 살면서는 알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같은 소재의 이야기를 여러 번을 읽어도 새롭게 놀라는 점은,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와 '이 이후에 어떻게 살 수 있는가' 같은 것들이다. 도저히, 경험하기 전에는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라 이렇게 누군가는 쓰고 나는 읽고, 또 잊어버리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좀 나아질 수 없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읽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