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희자야, 라고 말하지도 못한 채로 자리에 주저앉아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음을 터뜨렸다. 반가움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동안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치받치던 두려움이 그제야 몸밖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이었다. 두려움이란 신기한 감정이었다. 사라지는 순간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니까. 할머니는 자신이 단 한 번도 새비 아주머니와희자가 대구까지 무사히 왔으리라고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희망이 꺾였을 때의 충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작은 희망까지도 모두 버린 채로 피난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