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겨울이면 오빠와 내가 아침밥을 먹는 동안 신발 안에 따뜻하게 데워진 차돌을 넣어두었다. 그 돌은 어머니가 둘째 이모를 만나러 부산에 갔다가 바닷가에서 주워온 것이었다. 우리가 밥을 다 먹으면 어머니는 이불을 걷으면서 말했다. "이제 옷 입자!" 이불 밑에는 우리가 입을 티셔츠와 바지와 양말이 순서대로 놓여 있었다. 현관에 앉아 신발을 신을 때면 나는 신발 안에 있던 차돌을 꺼내 두 손으로 감쌌다. 그러면 손도 금방 따뜻해졌다. 손에서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장갑을 꼈다. 오빠는 따뜻한 신발을 신고 눈길을 걸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나는 따뜻한 신발을 신고 길을 걷다보면 낯선 곳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고 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내 말을 들은 오빠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따뜻한 신발 덕분에 오빠는 자신감이 넘치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책임감 강한 아버지가 되었다. 따뜻한 신발을 신고 동화 속 주인공을 상상하던 나는 뭐가 되었을까?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적절한 단어를 떠올려보았다.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음, 나는, 그냥 어른이 되었지." 나는 그렇게 말해보았다. 그리고 차에서 펜을 꺼내와 '내 자리'라고 쓰인 낙서 옆에 새 낙서를 했다. '그래, 니 자리.' 그러고 나자 그냥 어른이 된 나 자신이 그다지 실망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