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의 소설 「6호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을 유도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의사 라긴의 권태로움과 그의 변화 과정을 통해, 체호프는 독자에게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하기야 죽음이 모든 인간의 정상적이고 필연적인 결말이라면,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방해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_p.71
라긴은 성실하게 근무하는 의사였으나, 날로 늘어나는 환자를 치유하면서도 여전히 변함없는 도시의 사망률로 인해 권태로움을 느낀다. 이러한 권태 끝에 라긴은 위와 같은 회의적인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는 단순히 라긴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현대인에게도 충분히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120년이 지난 지금도, 일의 반복과 그로 인한 피로는 여전히 우리 삶의 일부이다. 고전의 묘미는 이런 점에서 느껴진다. 시간이 흘러도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6호실」의 주요 배경은 정신병원의 '6호실'로, 이곳에서 의사 라긴과 환자 그로모프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결국 라긴도 환자가 되어 '6호실'에 갇히게 된다. 나는 '전락하다'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는, 의사에서 환자가 되는 것이 일종의 실패이자 비극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환자 그로모프가 자신이 가둬진 것이 어떤 논리로 진행된 것인지 묻자, 라긴은 “단지 무의미한 우연일 따름”이라고 답한다. 라긴이 환자가 된 것도 이 "무의미한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라긴의 전락 과정의 발단을 아래 문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상념이 식어버린 지구와 함께 태양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자기 아파트 옆 중앙 병동에서는 사람들이 질병과 육체적인 불결함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_p. 81
나는 이 문장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때로 뉴스를 보면 내가 일상을 지내는 동안, 다른 지구 한편에서는, 다른 한국 한편에서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결국 우울감에 사로잡혀 뉴스를 회피하게 된다. 그러나 라긴은 회피하지 않았다. 나는 라긴이 전락했다고 표현했지만, 결국 그 자신을 찾았다고도 생각한다. 라긴의 회피하지 않은 용기는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라긴처럼 깊고 끝없는 사색에 빠지게 되면 결국 전락하고 말긴 하겠지만 말이다.
“지성이 제공하는 즐거움을 누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도, 너무도 안타깝다. 오직 지성만이 흥미롭고 의미 있으며, 나머지 모든 것은 사소하고 비루하다…….” _p. 106
환자 라긴은 이 문장을 조용한 음성이라도 음성을 내어 말해버렸다. 이것이 결국 환자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었으리라. 마음 속으로 말해야 하는 것이 입 밖으로 내버려진 것.
체호프의 소설을 읽으면 등장인물의 “너절한 기분”이 그대로 전이된다. 내 마음 속 검정색 감정들을 들켜버린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