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의 단편들은 오래된 농담 같다. 그만큼 잘 쓴다.
어쩔 수 없는 불행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처연하면서도 구슬프지만 작은 연민과 희망 그리고 약간의 농담 때문에 시절의 아픔마저 보듬게 된다.
지독한 현실을 대하는 인물들이 태도가 흥미롭다. 짧은 단편임에도 캐릭터에 녹아든다.
표제작 <상자 속의 사나이>, <구스베리>, <사랑에 관하여>는 연관된 화자가 등장한다. 벨리코프같은 인물들은 그들 자신이 세운 잣대와 틀을 절대로 놓아버릴 수 없다. 그것만이 안위를 지키는 일이라고 여기지만 정작 스스로를 망치는 것임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벨리코프의 어이없는 죽음? 글쎄 결코 과한 예가 아니다. 살아보니 저런 인간보다 더한 인간들이 너무나 흔하다는 게 놀라우니까.
"앞으로도 얼마나 많이 나타나는지!"-p.184
그럼에도 따지고 보면 상자 속에 살지 않는 인간이 있긴 할까. 이반 이바니치의 말처럼 "그런데 우리가 답답하고 비좁은 도시에 살면서 하잘것없는 서류를 작성하고 카드놀이를 하는 것이 건 상자 속 삶이 아닐까요?" -p.185
그러면서 이반은 <구스베리>에 꽂혀 오로지 구스베리만 생각하던 동생 니콜라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무실에 앉아 농촌 생활의 꿈을 꾸던 그는 그 바람을 현실화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상자 속에서 욕망의 괴물로 전락한다. 만족 뒤에 드리워진 불행을 떠올려보자. 그 불행의 이면에 드리워진 행복한 이들의 외면이 보이지 않는가. 이반 이바니치의 뼈 때리는 말이 그저 지루한 이야기로 들린다면 세상은 늘 총체적 난국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와는 다르게 알료힌은 몸소 딜레마를 극복한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의 욕망의 상자를 열어젖혔을 때 연쇄적으로 터질 타인의 상처를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부디 이런 인간이 더 많아져야 할 텐데.
<사냥꾼의 수기>를 읽을때도 느꼈던 감정인데 러시아 문학은 참으로 매력덩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