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라는 언어에 대한 연정의 기록'
『롤리타』 「작가의 말」에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이 소설을 “영어라는 언어에 대한 연정의 기록”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말은 『롤리타』를 요약하는 하나의 설명서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소설가 나보코프는 한때 교수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코넬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그 수업을 들었던 사람 중에는 소설가 토머스 핀천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연방대법관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도 나보코프의 수업을 들은 학생이었습니다. 〈타임스〉 사설에서 그는 나보코프의 수업이 자신의 인생(특히 글을 읽고 쓰는 방식)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습니다. 그 수업 중에 나보코프는 소설의 수준을 판별하는 좋은 공식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시의 정밀함과 과학의 직관을 하나로 융합한 소설. 이 표현은 그가 사랑한 소설들, 『마담 보바리』 『율리시스』 「변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부합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나보코프는 좋은 소설을 쓰고자 『롤리타』를 쓴 게 아닌 듯합니다. 물론 그는 ‘평범한’ 사랑 이야기이면서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좋은 소설이 아니라 최고의 소설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려면 그는 뛰어난 소설가에게도 끔찍이 어려운 과제를 해내야만 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모방품인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님펫을 사랑하는 미치광이의 회고록을 써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모어인 러시아어가 아니라 영어로 말입니다.
『롤리타』를 일종의 가면극이라고 생각해봐도 좋겠습니다. 한 예술가가 가면을 쓰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자주색 비단으로 장식된 가면은 금기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그 이야기의 윤리적이고 자극적인 질문에 상응합니다. 그러나 가면을 쓴 예술가는 실은 윤리적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과대망상에 걸린 학자의 거친 꿈을 묘사한 소설은 심미적 희열이라는 목적에 들어맞습니다. 『모비 딕』의 소재가 향유고래이듯이 나보코프는 한 아이를 소재로 『롤리타』를 썼습니다. 이 소설 자체가 그에게 커다란 시험이었습니다. 글쓰기의 고통에 시달린 끝에 원고를 불태울 뻔한 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보코프는 단어로 지어진 불멸하는 크리스털 왕국을 만들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