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때부터 14살 때까지 약 7년 동안 피아노를 배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제목을 보자마자 그 때 그 시간들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이끌렸던 것 같다.
이 책은 음악에세이로 분류되어 있지만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들과 그의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들이 번갈아 나오면서 마치 에세이와 소설 그 중간쯤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저자는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피아노를 배웠지만 현재 책 편집자로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참석하게 된 동창회에서 ‘아직도 피아노 치니?’ 라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피아노로 꽉 채워져 있었던 시절을 되새겨 보게 된다. 나름 피아노에 재능을 보인 저자는 피아노 앞에 앉아있을 때 만큼은 안락한 자신만의 공간으로 여기며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유일한 현실도피처로 삼으며 직업적 음악가로 거듭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피아노 교육을 받을수록 정해져
있는 음들이 새겨진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정통 클래식 피아노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재즈피아노에 관심을 갖게 되지만 그 당시 재즈계에서 여성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직업으로서의 음악가의 길이 불투명해 보였던 저자는 그 길로 피아노를 인생에서 멀리하게 된다.
그러던 중 돌아가신 할머니 ‘앨리스’가 과거 촉망받던 소프라노이자, 성가대 지휘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앨리스’의 음악 경력도 짧게 끝이 나고 마는데.. 그것은 바로 그 당시 여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 바로 ‘결혼’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꿈’보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서 앨리스는 해 오던 공연들을 중단했고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앨리스의 이야기들을 읽을 때에는 우리 엄마와 할머니가 떠올랐다.
두 사람도 많고 많은 꿈들이 있었을테지..
여의치 않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다양한 교육적 혜택을 제공 해 준 부모님에게 이 글을 빌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저자는 피아노에 대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에 대한 애정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직업적 음악가로는 실패했어도 매주 참여하는 재즈 앙상블 수업을 통해 아마추어 음악가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인다.
“사랑에 빠지건, 피아노를 연주하건, 좋은 부모나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건, 우리는 모두 아마추어다. 학습과 연습을 통해서 전문성을 얻거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긴 해도 삶의 대부분 행위에서 우리 모두는 그 일을 처음 하는 것이고 즉흥적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연결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한다. 우리 모두 제한된 시간 안에 교육, 어린 시절, 가졌거나 부족했던 기회들이라는 한도 안에서 선택들을 내리고 있다. 우리 모두 선율과 화음 사이에서 균형 잡는 것을 배우고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혼자 연주하는 법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p.324)
나의 버킷 리스트 중에 ‘재즈 피아노’ 배우기가 있다. 학업에 매진한다는 이유로(그닥 열심히 하진 않았던 듯 싶다) 그만 둔 피아노였지만 내 인생에도 피아노에 대한 애정이 아직은 조금이나마 살아있나 보다.
아주 오랜만에 피아노 건반에 다시 한번 손가락을 올려보고 싶게 만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