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꽤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그리고 '2021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미스터 심플'이라는 작품도.
이번 독파 챌린지 도서 목록에 '정용준 작가'의 '선릉 산책'이 올라온 것을 보고 바로 신청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도 '미스터 심플'도 내 옆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실감 나게 풀어놓는 이야기 속에서 나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문장들이 있었다.
설교하는 느낌이었으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어도 싫었을 텐데, 그냥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느낌이라 좋았던 문장들.
IT 관련 직종 회사를 다녀서 그런지 회사가 주로 강남 쪽에 있었는데, 당시 점심 먹고 산책한다고 선릉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굳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진 않았었지만, 울타리 따라 한 바퀴 주욱 도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그런 의미에서도 이 '선릉 산책'은 어떤 내용의 책일지 궁금했다.
'선릉 산책'은 두부/ 사라지는 것들/ 두번째 삶/ 이코/ 미스터 심플/ 스노우, 총 6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책이다.
단편집 같은 경우에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 초반에는 조금 헤매는 경우가 있다.
전편의 여운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이야기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경우는 그런 적응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수월하게 읽혔다.
이야기의 도입부부터 호기심이 생기게 만드는 작가의 솜씨 덕분이 아닐까 싶다.
각각의 이야기가 다 다른 등장인물과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분위기는 통일되어 있는 느낌이다.
아니, 분위기라기보다는 이야기의 주제가 통일된 느낌 쪽에 가깝다.
자코메티의 조각들을 보면 젓가락같이 가느다랗게 사람을 표현하곤 하는데,
그 조각들을 보면 모든 것이 다 깎여나가고 슬픔만이 남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 글의 인물들에게서 받은 느낌이 그랬다.
다 깎여나가고 그나마 남은 무언가로 살아가는 존재들을 보고 있는 느낌.
단편들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흥미진진하게 본 것은 '두번째 삶'이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가 마지막으로 상대했던 범죄자가 '두번째 삶'의 한준일 같은 유형의 인물이었다.
한준일은 과연 어떤 삶을 두 번째 삶으로 선택했을까.
우리의 법으로 과연 그를 단죄할 수 있을까.
고작해야 집행 유예던가 징역 1~2년 정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먼저 들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정의 구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리고 그간 너무나도 힘든 삶을 살았을 주인공과 그의 가족들의 행복해지기를.
그러고 보니 문득 드는 궁금증.
'두부'는 결국 '두부'였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개인 '승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