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있는 힘껏 손을 뻗어 초인종을 누른다. 문은 열릴 기미가 없다. 초인종 소리는 대답 없는 질문처럼 허공에서 사라진다. 고개를 들어 문을 감싼 담벼락을 살핀다. 자갈은 크기가 제각각이다. 담에 한쪽 뺨을 가져다댄다. 살을 에듯 차가운 기운이 전해진다. 나는 조금 뒤로 물러서서 담을 올려보다가, 불룩 튀어나온 자갈 위에 왼발을 올린다. 자갈은 시멘트에 단단히 박혀 있다. 발에 힘을 주면서 두 손을 뻗어 어깨쯤 위치한 자갈을 하나씩 움켜쥔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아귀에 꽉 힘을 준다. 담을 반쯤 올라갔는데도, 방범 경보음은 울리지 않는다. 담 너머에서 개가 사납게 으르렁거린다. p.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