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존재가 또 있을까..?
상해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푸르딩딩한 피부색, 찢어진 곳을 호치키스 같은 것으로 찍은 듯한 자국들.
하지만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몸에 박혀있는 나사 같은 무언가일 것이다.
거기다 덩치는 또 왜 그리 거대한지.
이것이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이미지일 것이다.
하지만 원작 소설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속에서의 '그것'의 이미지는 굉장히 많이 다르다.
전혀 다른 존재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일단 '그것'은 이름이 없다.
시체들을 조합하여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의 이름이 바로 '프랑켄슈타인'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생각도 딱히 들지 않는 것이, 내가 볼 땐 '그것'보다는 프랑켄슈타인 쪽이 훨씬 더 괴물 같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야망 때문에 괴물을 만들어내게 된다.
더 작은 생명체부터 만들어내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내가 복잡한 인간을 못 만들 건 또 뭐냐' 하는 마음으로 인간부터 도전하게 된다.
문제는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이 만든 생명체를 전혀 책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명체가 깨어나긴 했는데, 외형이 추하다고 해서 그냥 외면해 버린 것이다.
그 추한 외형까지도 자신이 만든 것이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그것'이 감수성이 뛰어난 지성체였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끝까지 '그것'의 이름조차 없다는 것이 '그것'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를 무엇보다 뚜렷하게 알려준다.
'그것'이 한 가정에 받아들여지기를 얼마나 바랬던가.
'그것'이 자기의 짝을 찾아 그저 평화롭게 살기를 얼마나 원했나.
하지만 그런 '그것'의 바람은 번번이 좌절되고, 자신을 만들어낸 창조주에게마저 철저하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에게 남은 것이 분노뿐이라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 내에서 아무리 고결한 인격자인 것처럼 포장을 하더라도 프랑켄슈타인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는 어찌 됐든 자신이 만들어낸 생명체를 책임졌어야 했다.
그것이 눈을 떴을 때 그렇게 외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돌봤어야 했다.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자기의 자식마저 조건에 미달하면 비정하게 버리는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굉장히 불쾌했다.
무엇보다도 '그것'의 이치에 맞는 논리에 설득되었으면서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그저 잠시 홀릴뻔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모습에선 화가 났다..
왜 프랑켄슈타인은 '그것'을 만들어냈는가.
왜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그런 외형으로 조합해서 만들어놓고 왜 '그것'을 깨우고야 말았는가.
'그것'이 자신의 창조주에게 그렇게도 애원했는데도 끝까지 자신의 창조물을 따스하게 품어주지 못했나.
그 자신은 좋은 부모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촌에, 무엇보다 멋진 친구까지 있었기에, 누구보다 사랑과 존중을 아낌없이 받았으면서도.
프랑켄슈타인은 '그것'만큼의 '인정'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 건만, 그 모든 것의 책임을 전부 '그것'에게 돌리는 모습에서, 오늘날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것에 만족스러울 정도다.
사실 글로만 읽어서는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이 얼마나 흉측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를 토닥여 주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해서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사실상 내 앞에 갑자기 그것이 나타나면 나부터도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겠지만...
차라리 그것에 지성이 없었으면 적어도 불행하기만 하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19세에 썼다는 메리 셸리의 통찰력이 너무 놀랍다
그녀 자신도 어느 사회에 속해서 살아가지 못했기에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소설의 원조격이 작품이라고 하지만 이 소설은 과학소설 장르에만 묶여있을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교,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외로움 등등에 관한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눈물이 났다.
그 처절한 외로움이 한순간도 위로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쓰러워서.
아무래도 나는 이 소설을 통해 '그것'에 감정 이입을 심하게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