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날 판매중인 야간열차의 티켓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 P시였다. 만약 D시로 가는 표가 남아 있었다면 D시로 갔을 것이다. 텅 빈 열차 칸에는 문과 나 둘뿐이었다. 나는 야윈 그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았다.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적당히 연명하다가 어느 순간 숨이 끊어지면 그뿐이라고. 부모 없이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탓인지,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너무 일찍이 노인이 되는 법을 배운 것이다.
(...)
문과 함께 P시에 내려오면서 나는 모든 걸 다 버렸다. 가족, 친구들, 직장, 자동차, 내 방, 침대, 책, 옷, 구두— 그것들은 나라는 인간을 이루는 세포였다. 나라는 인간의 역사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전부를 버리고 뒤돌아섰다. 과거는 끝났다. 문이 나의 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