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진은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노인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도 노인에게 병색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살이 말라 골격만 남은 얼굴은 생기가 빠져나가 빛이 바래 있었다. 병원 복도에서, 입원실에서, 수도 없이 봤던 얼굴. 그녀 자신의 얼굴이었다. 기진은 그 노인이 다시 살아가겠다는 소망으로 유성우를 보러 왔으리라 짐작했다. 삶에서 내쳐진 자의 성마름과 초조함이 노인의 몸집에서, 말투에서 배어나왔다.
(...)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어디까지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노인은 기진을 이끌고 숲길을 걸어갔다. 그들은 점점 더 동굴 같은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숲은 거대한 동물의 뱃속 같았다. 별똥별 따위는 볼 수 없었지만, 기진은 검은 허공을 향해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그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뭔가를 바라고, 염원하고, 기도하는 일. 하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그런 소원이 있었다는 것이, 늘 마음속에 그 소원을 간직해왔다는 것이 새삼 놀라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