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집은 그전에도 몇 차례 가본 적이 있었다. 크고 황량한 집이었다. 내가 그 집 정원에 서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버티자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더니 홀로 떠나버렸다. 할머니가 나와서 내게 집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내가 울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버지가 나를 쓸모없는 가구처럼 해치워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유일하게 나를 염려하던 사람, 가냘픈 팔로 온 힘을 다해 나를 끌어안던 사람, 죽기 전까지 내게 미안하다고 사죄하던 사람은 이제 세상에 없었다. 사라졌다. 소멸되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