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면 그때껏 잠복해 있던 망상이 기척 없이 일어나 머릿속을 점령했다. 잠깐 졸다가도 누군가 떠드는 소리, 웃는 소리,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소스라쳐 깼다. 죽어버려, 작지만 분명하게 속삭이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나를 결박하듯 독주를 마시고 고꾸라져 잠들었다. 결국 나는 더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나는 친밀했던 누군가의 죽음처럼 그 사실을 서서히, 그러나 종내는 완전히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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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모님을 다시 떠올린 것은 마트에서 맡은 익숙한 향기 때문이었다. 섬유유연제 홍보행사를 하는 중이었는데, 그곳에서 들이민 시향지에서 그 향기를 맡았다. 나는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눈을 감은 채로도 그 향기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인공적인 바닐라향이었다. 사람의 체취에 섞여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는 향기. 내가 아는 사람에게서는 바닐라와 술의 향기가 났다. 달콤하고 시큼한 향기. 나는 율이에게 그 향기를 맡아보라고 했다. 아이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