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은 갑자기 꿈에서 깬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발코니로 나가서 주차장을 눈으로 훑었다. 전날 렌터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당연히 다른 차가 있었다. 세상에 그 차가 오직 한 대뿐인 것은 아니라고 미연은 생각했다. 같은 모델의 차량 수천, 수만 대가 지금도 길 위를 달리고 있다고. 성재와 연주는 선약이 있다고 했다. 근처의 저수지로 간다는 말 따위는 들은 적 없었다. 발코니의 철제 난간 위에 차갑게 굳은 담뱃재가 뭉쳐 있었다. 미연은 그것을 손으로 닦아냈다. 담뱃재는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미연은 흉물스러운 발코니 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늘 혼자서라도 코팅지를 벗겨내고 새로 페인트칠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원래의 벽과 같은 짙은 회색으로, 주말이 다 지나기 전에. 미연은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집안에서 민욱이 부르는 소리에도, 아이들이 깨어 울부짖는 소리에도 그녀는 응답하지 못했다. 뭔가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텅 빈 벽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그곳을 벗어날 줄 몰랐다.